얼마 전 태양을 인터뷰하 면서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그가 공연의 사운드를 밴드의 라이브로 채우겠다고 한 말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가수들은 공연에서 밴드를 쓴다. 하지만 태양은 경우가 다르다. ‘나만 바라봐’에서 확인되듯, 그의 곡은 프로듀서가 정교하게 만든 사운드로 층층이 쌓여있다. 그만큼 실제 연주에서는 정밀한 맛이 살아나기 어렵다.
‘I need a girl’에서 태양의 보컬 뒤로 살짝 깔리면서 바운스를 만들어내는 퍼커션 소리는 실제 연주가 아니다. 이 소리를 실제 퍼커션으로 연주하면 소리가 좀 더 세지면서 전체적인 사운드의 균형이 무너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태양이 사운드와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특유의 바운스도 망가진다. 그는 ‘I need a girl’에서 박자와 박자 사이를 자기 마음대로 나누고 붙이면서 보컬로 바운스를 만들어내고, ‘Superstar’처럼 힘차게 전진하는 곡에서마저 부드러운 R&B보컬로 쓸쓸한 느낌마저 들게 하지 않는가. 태양이 달리 자신의 음악적 이상향을 “아침 출근길에 들었을 때는 굉장히 희망적이고 퇴근길에 들었을 때는 위로받을 수 있는 음악”이라고 한 게 아니다. 보컬과 사운드의 조화로 섬세하게 감정을 조절하는 그의 스타일은 보다 복잡미묘한 감성을 전달하기 좋다. 외부인의 시각에서는 본인의 특징과 반하는 부분이 있었던 셈이다.
그 러나, 태양은 공연에서 밴드 라이브로 음반에 담긴 바운스를 재현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밴드 라이브로 음반에 숨어 있던 스케일을 극대화했다. 이번 공연의 사운드는 록적이라고 할 만큼 다이내믹했고, 대부분의 곡들이 후반으로 갈수록 스케일이 극대화 되는 구성을 보여줬다. 'Just a feeling‘은 음반에서는 리듬이 빨라지면서 경쾌한 느낌을 강조하고, 태양의 매끈한 보컬이 바운스를 만들어낸다. 반면 공연에서는 기타와 드럼이 점점 더 박력있게 치고 나가면서 사운드가 점점 더 파워풀해지고, 점층적으로 곡의 스케일이 커진다.
공 연의 사운드도 이런 방향에 맞춰졌다. 파워풀한 드럼 연주와 기타 연주가 보다 선명하게 들리도록 고음부가 날카롭게 부각 돼 공연장 전체를 채웠고, 전반적으로 사운드의 분리도 나쁘지 않아서 파워풀한 드럼과 기타 속에서도 작게 퍼지는 건반 소리도 잘 들렸다. 다만 곡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베이스가 다소 묻히는 경향이 있었고, 고음을 강조하다 보니 앵콜에서 나온 강한 전자음이 살짝 찢어지는 소리가 난 것은 아쉬웠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음악 스타일이 스타일인 만큼 퍼커션과 베이스로 좀 더 펑키한 느낌을 살렸다면 더 좋았겠다 싶지만, 이거야말로 공연하는 사람의 취향을 존중해야할 부분일 듯 싶다.
이 런 편곡을 선택한 것은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공연은 자세한 감상이 가능한 음반과 달리 보다 임팩트있는 구성이 필요하고, 태양 역시 기존의 퍼포먼스보다 노래 위주의 무대를 꾸미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아침 출근길에 들었을 때는 굉장히 희망적이고 퇴근길에 들었을 때는 위로받을 수 있는 음악”이란 그만큼 곡 안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섬세하게 표현되야 하고, 그만큼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Move’에서는 느린 템포 위에 태양의 보컬로 곡을 조금씩 빠르게 변화시키면서 곡의 분위기를 말 그대로 ‘우울하면서 힘차게’ 끌고 간다. 공연에서의 밴드 편곡은 이런 변화의 폭을 극대화 시키면서 곡에 담긴 감성을 극대화 시키다. 정규 앨범이 흑인음악을 하는 뮤지션으로서의 필과 스타일을 잘 드러냈다면, 공연은 밴드 편곡으로 태양 특유의 정서를 누구라도 느낄 수 있도록 명확하게 드러냈다.
물 론 한가지 문제는 있다. 드럼이 천둥치듯 울리고, 다이내믹한 기타가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면서 곡의 스케일이 커지는 공연장에서 보컬리스트가 존재감을 가지려면 그 소리들을 모두 뚫고 나오는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게다가 공연이 열린 경희대 평화의 전당은 무대는 매우 좁고, 나머지 공간은 3층 객석으로 이뤄져 있다. 가뜩이나 파워풀한 사운드가 공연장 전체를 메울 수 밖에 없다. 게스트로 출연한 2NE1의 경우 무대 자체는 흥겨웠지만, 멤버들의 보컬이 사운드에 묻히곤 했다. 게다가 태양은 섬세하게 필을 살리는데 능한 보컬리스트고, 그 매끈하고 부드러운 보컬은 그대로 살린 채 힘있는 보컬을 들려줘야 하니 마음대로 지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 러나 태양은 정말 그 그대로 밴드의 사운드를 뚫었다. 공연 후반부까지 음정이 나가지도, 성량이 줄지도 않았다. 특유의 R&B 보컬도 유지됐다. 과장 좀 보태면, 마치 목소리가 대기권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그는 목소리로 밴드의 사운드를 주도하면서 관객들을 자신에게 집중시킬 수 있었다. ‘Just a feeling’과 ‘Move’에서 곡의 하이라이트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점점 커지는 스케일을 따라 힘을 더해가는 태양의 보컬에 있었다.
이 런 선택은 그의 춤을 실컷 보고 싶었던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것일 수도 있다. 태양은 여전히 춤을 췄고, 춤을 추면서도 흔들림 없는 노래를 들려줬다. 그러나, 대부분의 곡에서 후반부마다 있는 힘을 다해 노래해야 하는 상황에서 계속 춤을 추기는 쉽지 않다. 그는 춤으로 유명한 ‘웨딩드레스’에서도 곡에서 가장 인상적인 동작들을 추되 노래에 힘을 싣는 쪽에 초점을 맞췄고, 게스트가 등장할 때 조금씩 쉬거나 다양한 콘셉트의 무대 구성으로 모든 부분에서 춤을 추지 않아도 무대가 비지 않도록 노력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공연을 끌고 가기 위해 춤과 노래의 비중을 적절히 조절한 셈이다.
태 양의 선택은 공연이 뒤로 갈수록 힘을 받는 이유가 됐다. 곡마다 점층적으로 스케일이 커지면서 사운드는 공연장을 가득 채우고, 그 사운드를 뚫고 나오는 태양의 목소리는 클라이막스에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무대를 장악한다. 이런 흐름이 반복되면서 관객들은 태양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이런 효과는 ‘웨딩드레스’, ‘Superstar’, ‘Breakdown’등 공연 후반부에서 극대화 됐다. 태양은 ‘웨딩드레스’ 시작부분에서 댄서조차 없이 수수하게 자켓을 입고 노래를 부르고, 포인트가 되는 부분에서 잠깐 혼자 춤을 춘다. 하지만 공연 전체를 자신의 목소리로 끌고 간 뒤, 일체의 장식을 배제한 상태에서 추는 그의 춤은 오히려 관객들이 그에게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무대에 혼자 서 있는 그가 무대를 꽉 채울 정도로 커보일 만큼. 콘서트 내내 있는 힘을 다해 ‘열창’을 하는 모습이 후반부까지 이어지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는 태양이 ‘기도’와 ‘I'll be there’처럼 잘 알려진 곡들을 도입부에 놓고, ‘Superstar’와 ‘Breakdown’을 앵콜을 제외한 공연의 실질적인 엔딩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음반에서는 시작부터 힘차게 전개되는 ‘Superstar’로 포문을 열고, 자신의 감성을 섬세하게 들려줄 수 있는 곡들로 이어졌다. 하지만 공연 내내 계속 스케일을 키우고, 자신의 목소리로 관객들을 몰입시키며 분위기를 고조시킨 흐름에서 ‘Superstar’는 관객을 열광시킬 수 있는 가장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졌다. 여기에 앨범에서 가장 신나는 곡인 ‘Breakdown’은 그 분위기를 그대로 몰고 가면서 열광적인 엔딩을 만들었다. 실제로 관객들은 전부 ‘Superstar'에서 알아서 일어났고, ’Breakdown‘에 폭발적인 호응을 보냈다.
말 하자면, 태양은 이번 공연에서 기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춤이나 스타일리쉬한 보컬의 느낌 대신 노래의 감성을 극대화 시키는데 초점을 맞추면서 목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것에 집중했다. 물론 공연은 그런 노래 위에 화려한 무대가 더해지는 것이긴 하지만, 퍼포먼스와 세련된 보컬 스타일로 유명했던 뮤지션이 목소리의 힘만으로 관객을 수긍시키는 것 역시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그건 어셔같은 흑인 음악 뮤지션들이 가끔 무릎을 꿇고 노래를 열창하는 것이 멋있게 보이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그만큼의 노래를 토해내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것과 같다. 태양이 춤을 추는 대신 무릎을 꿇고, 몸을 숙여 공연장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에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이번 공연을 통해서 테크닉이나 퍼포먼스 이전에 관객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때의 느낌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앵콜무대에서 태양이 'Take it slow' 등 무대 대부분을 혼자 채우면서 관객을 이끈 건 공연 내내 그의 노래가 만들어낸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관객들은 다른 화려한 무대보다 더 앵콜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다 만 아쉬운 것은 그가 서 있는 무대의 황량함이었다. 태양의 노래는 곡마다 콘셉트가 달라진다. 팬 중 한 명을 무대 위로 불러 올린 ‘I need a girl’외에도 ‘Move’에서는 댄서들이 쇼걸처럼 봉춤을 추고, 다른 무대에서는 의자나 침대가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연장 무대는 뒤편에 설치된 계단 외에는 어떤 장치나 무대 인테리어도 없이 무대 대부분을 텅텅 비워뒀다. 스태프들이 관객들이 다 보이는 곳에서 이동하며 소품을 가져 나올 수 밖에 없어 분위기를 산만하게 만들었고, 텅 빈 무대에 소품만 올려놓은 모습은 마치 작은 세트만 올려놓은 소규모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 ‘Move’에서 보여준 댄서들의 봉춤은 한 무대에 다닥다닥 붙이기보다는 무대의 위 아래, 좌우로 나눠서 넓게 배치해 가수가 보여주는 퍼포먼스의 배경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공연의 무대는 그럴만한 공간도, 그런 느낌이 들도록 도와줄 무대 장치도 전혀 없었다.
게 다가 1층 관객은 그래도 괜찮았겠지만 2층과 3층 관객들은 무대를 내려다보면서 공연장의 휑한 검은 바닥을 봐야 했다. 공연에 대한 몰입감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공연 초반에는 자꾸 그 바닥에 눈이 갈 정도였다. 공연장 구조를 생각한다면 조명으로 최대한 바닥에서 시선을 빼앗기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공연의 조명은 아예 어두워지는 순간이 아니면 대부분 밝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어떤 임팩트도 주지 못했다. ‘나만 바라봐’, ‘I need a girl’, ‘I'll be there’ 등 태양의 무대가 댄서와 소품들을 활용해 하나의 미장센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 공연의 미술과 조명은 좀 더 다채롭게 무대를 채워야 했다. ‘Superstar’와 ‘Breakdown’이 유독 눈에 띈 이유 중 하나는 태양과 댄서들이 마칭밴드 콘셉트의 의상을 입으면서 공연장의 다른 부분에 눈 돌릴 수 없는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어냈다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공연장이 넓냐 좁냐의 문제를 떠나서, 이번 공연에는 좀 더 많은 투자가 필요했고, 가수가 아닌 무대가 곡을 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 점에서 이번 공연은 태양의 정규 앨범과도 겹쳐 보인다. 정규 앨범에서 태양의 보컬은 미니 앨범보다 진일보했지만, ‘기도’-‘나만 바라봐’만큼의 충격을 주는 곡은 없었다. 공연 역시 태양의 능력은 그 대담한 선택이나 그 선택을 책임지는 역량이라는 점에서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공연 전체의 완성도에서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가 공연에서 한 발 더나아가기 위해서는 그가 생각하는 그림을 채워줄 수 있는 회사의 투자와 공연 디렉터로서의 역량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태양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을까. 그가 빅뱅으로 처음 데뷔했을 때 지금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려웠다. 성장기의 슈퍼맨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을 날기도 하니까.
Via Triple Crown
XOXO